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 신왕국 (문단 편집) ==== 투탕카멘 ==== ||[[파일:800px-CairoEgMuseumTaaMaskMostlyPhotographed.jpg|height=300]]||[[파일:1458231265-gettyimages-460300436.jpg|height=300]]|| ||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 투탕카멘의 관[* 투탕카멘의 미라를 안치한 관은 겹겹이 삼중으로 되어 있었다. 사진 뒤쪽에 있는 황금빛 커다란 관이 가장 바깥 관이고, 앞쪽에 있는 것은 두 번째 관이다.] || 아케나텐의 재위 말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보통 고고학자들은 아케나텐의 아내인 [[네페르티티]][* 이름의 뜻은 '미녀가 왔다'로, 외모가 출중하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현대적인 기준에서 봐도 굉장히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나 후임 파라오인 [[스멘크카레]]가 나이든 아케나텐과 함께 공동 통치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스멘크카레가 아케나텐과 무슨 관계였는지에 대해서 확실하지가 않은데, 아케나텐의 아들이라는 말도 있고 아니면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이자 아케나텐의 형제였다는 말도 있다. 스멘크카레는 아케나텐의 장녀와 결혼해 정통성을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케나텐이 기원전 1334년 즈음에 사망하고[* 아케나텐은 아마르나 인근의 왕실 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아텐 신앙이 아케나텐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며 수도가 다시 테베로 옮겨갔고, [[투탕카멘]]이 아케나텐의 묘를 다시 [[왕가의 계곡]]의 KV55 무덤에 이장했다. KV55 무덤은 1907년 발굴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스멘크카레도 행적이 불분명, 아마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스멘크카레가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한 여성 파라오 네페르네페루아텐(Neferneferuaten)[* 네페르티티의 다른 이름이라는 설, 혹은 아케나텐의 딸 메리타텐이라는 설이 공존한다.] 역시 2년여 만에 세상을 떴다고 본다. 네페르네페루아텐 이후 즉위한 인물이 바로 소년왕 '''[[투탕카멘]]'''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로 꼽히는 투탕카멘은 명성과는 달리 정작 그 당시에는 굉장히 존재감이 없었던 군주였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몇천 년에 걸쳐 도굴되지 않았던 이유는 투탕카멘이 워낙에 존재감이 없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다른 위대한 파라오들은 거대한 무덤을 파 도굴꾼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던 것에 반면, 투탕카멘은 재위기간도 짧고 무덤의 규모도 작아 도굴꾼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 어떻게 보면 당시에 너무도 존재감이 없었기에 오히려 후대에 가장 유명해진 얄궂은 케이스.] 8~9년 정도 재위한 투탕카멘의 시대에 이집트는 아텐 신앙을 버리고 다시 옛 다신교 신앙으로 회귀했으며, 아마르나는 버려졌다. 이집트의 수도는 다시 [[룩소르|테베]]로 돌아왔고, 어린 파라오는 꼭두각시인 채[* 참고로 투탕카멘의 즉위 당시 이름은 '투탕카텐'이었다. 그러나 신관들이 아텐 신앙을 버릴 것을 요구하며 이름을 '투탕카멘'으로 개명했다.] 기존 신관 계급들이 권력이 강해졌으며 모든 것은 아케나텐의 통치 이전으로 돌아갔다.[* 신관들은 자신들을 무시하고 [[아텐]]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신앙을 신봉했던 아케나텐을 혐오했다. 결국 제18왕조 이후 아케나텐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기록말살형]]에 처해졌고, 아케나텐을 묘사한 부조나 석상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아케나텐과 아마르나 시대의 석상은 굉장히 희귀한 편.] 투탕카멘은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신원 불명의 이유로 사망했다.[* 막 성년이 되어 친정하기 직전의 오묘한 타이밍에 죽었기에 학자들은 [[암살]]되었을 가능성을 높게 친다.] 투탕카멘이 죽자 당시 사실상의 실세이자 재상이었던 [[아이(파라오)|아이]]는 투탕카멘에게 후사가 없음을 이유로 들며 새로운 파라오가 되었다.[* 아이는 아멘호테프 3세의 핏줄이 흐르는 왕족이었다.] 이미 아케나텐 시대부터 아마르나에 개인 무덤을 짓는 것이 허가되는 등 왕 바로 밑의 힘을 휘두르던 아이는 어린 투탕카멘이 즉위하면서 거의 실질적인 파라오처럼 행세했고, 투탕카멘이 세상을 떠나자 바로 투탕카멘의 아내 안케세나멘과 결혼하며 파라오 자리를 꿰찼다. 다만 아이는 이미 파라오에 즉위한 시점에 엄청난 고령이었기에 4년밖에 재위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했다. 아이는 파라오로서 옛 종교를 복원하고 아케나텐의 흔적을 지우는 데에 총력을 쏟았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아이는 죽기 직전 낙트민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였으나 군사령관이자 군권을 쥐고 있던 [[호렘헤브]]가 낙트민을 몰아내고 아이 다음의 파라오로 즉위했다. 호렘헤브는 아텐의 대사제들이 맡고 있던 국가의 권력을 빼앗아 다시 관료들에게 분배했고, [[아문]]의 신전을 복구하는 동시에 군대를 개혁하는 등 14년 정도의 통치 기간 동안 나름 많은 일을 하며 이집트를 완전히 아케나텐 이전 시절로 되돌렸다.[* 호렘헤브는 즉위 직후부터 전임자들의 흔적 지우기에 몰두했다. 특히 바로 전대 파라오였던 아이에 대한 훼손이 대단히 심각했는데,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대부분이 부서졌고 무덤은 파헤쳐졌다고 전해진다.] 호렘헤브가 기원전 1292년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재상 파람세스가 [[람세스 1세]]로 즉위, 제19왕조를 개창하면서 260년 가까이 지속된 제18왕조도 끝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